
췌장암 환자의 70~80%가 진단 시점에 이미 3기 혹은 4기입니다.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등이 서늘해졌습니다. 저는 공복혈당 경계성 진단을 받은 이후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당뇨와 췌장이 이렇게 가깝게 연결돼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모르고 지나쳤던 신호들이 하나씩 떠오르면서, 이건 좀 더 진지하게 알아둬야겠다 싶었습니다.
왜 췌장암은 항상 늦게 발견될까
췌장은 해부학적으로 후복막(後腹膜) 장기에 해당합니다. 후복막 장기란 위나 대장처럼 복강 앞쪽에 자리한 게 아니라 등 쪽 깊숙이 위치한 장기를 말합니다. 이 위치 때문에 일반적인 복부 초음파를 찍어도 장내 가스만 조금 차 있으면 췌장 전체가 가려져 버립니다. 특히 췌장의 몸통과 꼬리 부분은 초음파의 사각지대인 경우가 많아서, 이상이 생겨도 영상으로 잡아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여기에 더해 국가 건강검진 항목에 췌장암 검사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도 큽니다. 암 표지자 검사인 CA 19-9도 위양성(실제로는 이상이 없는데 수치가 높게 나오는 현상)이 잦아서 단독으로는 확실한 스크리닝 도구가 되기 어렵습니다. 결국 조기에 잡아내려면 조영제 CT나 내시경 초음파를 직접 찾아서 받아야 한다는 결론인데, 아무 증상도 없는 상태에서 그런 검사를 받으러 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초기에 뚜렷한 통증도 없고, 신호도 없고, 검진에도 잡히지 않으니 발견이 늦어지는 건 어떻게 보면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이 약 10% 수준에 머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출처: 국립암센터).
몸이 보내는 위험신호, 이렇게 구분합니다
제가 공복혈당 경계 판정을 받기 전에 이상하다고 느꼈던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오전에 화장실을 가면 거품이 일었고, 새벽에 한 번씩 깨서 소변을 보러 가는 일이 잦아졌고, 오후에는 유난히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했습니다. 당시엔 전날 술 때문이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게 당뇨 초기 신호였고, 더 나아가 췌장 기능 저하와 연결되는 흐름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췌장에 종양이 생기면 췌관(이자관)을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췌관이란 췌장에서 만들어진 소화 효소들이 십이지장으로 흘러 내려가는 통로입니다. 이 길이 막히면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인 라이페이스(lipase)가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소화되지 못한 지방이 대변에 섞여 나오는 지방변이 나타납니다. 지방변의 특징은 변기 물 위에 기름막이 생기거나, 변이 끈적해서 잘 내려가지 않거나, 악취가 심하고 색이 회색이나 점토색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유산균 문제로 오해하고 넘기면 안 됩니다.
등 쪽 통증도 흔히 놓치는 신호입니다. 췌장이 후복막 장기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방사통(放射痛), 즉 직접 해당 부위가 아닌 다른 곳으로 퍼지는 통증이 등 쪽으로 나타납니다. 근육통과 헷갈릴 수 있는데 구분법은 간단합니다. 근육통은 마사지하면 시원하고, 특정 근육 부위가 국소적으로 아픕니다. 반면 췌장 때문에 생기는 등 통증은 마사지해도 전혀 개선이 없고, 앞으로 숙이면 조금 덜하다가 뒤로 누우면 더 심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자세 변화에 따른 통증 차이가 핵심 구분 포인트입니다.
병원에 가봐야 할 위험신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4주 이상 지속되는 소화불량이 위장약을 먹어도 개선되지 않을 때
-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데도 체중이 계속 빠질 때
- 마사지해도 풀리지 않는 왼쪽 등의 뻐근한 통증이 있을 때
- 소변색이 콜라처럼 진해지고 눈이나 피부가 노래지는 황달 증상이 생길 때
- 변기 물 위에 기름막이 생기거나 변색이 회색·점토색으로 바뀔 때
갑자기 생긴 당뇨, 췌장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당뇨와 췌장암의 관계는 단순히 당뇨가 오래되면 위험하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방향이 양쪽으로 작동합니다. 당뇨가 지속되면 췌장암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반대로 췌장암 종양이 자라면서 베타세포(β-cell) 기능을 무너뜨려 신규 당뇨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베타세포란 췌장의 랑게르한스섬에 분포하며 혈당이 오르면 인슐린을 분비하는 세포입니다. 종양이 이 조직을 침범하면 인슐린 분비 자체가 줄어들어 같은 양의 탄수화물을 먹어도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고혈당 상태가 지속됩니다.
중년 이후에 갑자기 당뇨 진단을 받으면서 동시에 체중이 빠지고 있다면, 이건 생활 습관 때문에 서서히 진행된 당뇨와는 결이 다릅니다. 생활 습관 당뇨는 공복혈당이 서서히 오르고 서서히 악화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당뇨가 생겼다면, 암 종양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췌장 조직을 침범했을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저도 공복혈당 경계 진단 이후 이 내용을 알게 됐을 때, 단순히 식단과 운동 문제만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췌장암 조기 발견을 위한 고위험군 기준에 대해서는 대한췌장담도학회에서도 가이드라인을 통해 50세 이상이거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 정기적인 영상 검사를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대한췌장담도학회).
올리브유와 아보카도, 췌장에 진짜 나쁜 걸까
이 부분이 저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올리브유는 공복에 한 숟가락씩 먹으면 좋다고 해서 꾸준히 마시고 있었고, 아보카도도 하루에 반 개씩은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췌장 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이런 좋은 지방들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을 접하니, 도대체 뭘 믿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핵심은 "좋은 지방이냐 나쁜 지방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의 총량"입니다. 췌장 외분비 기능이 정상인 사람에게는 올리브유나 아보카도, 견과류 같은 불포화지방산이 분명히 유익합니다. 그런데 급성 췌장염이나 만성 췌장염, 또는 췌장암으로 인해 외분비 기능이 저하된 상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외분비 기능이란 췌장에서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을 소화하는 효소들을 분비하는 역할을 말합니다. 이 기능이 떨어지면 지방의 종류와 관계없이 일정량 이상의 지방은 소화되지 못하고 위장관에 남아 설사, 복통, 지방변을 일으킵니다.
당뇨 공부를 하다 보면 정보가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일반적인 대사 건강 관점에서 좋은 것이 특정 장기 상태에서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아보카도와 올리브유를 무조건 끊을 필요는 없지만, 췌장에 이상 신호가 있는 상황이라면 섭취량을 줄이거나 전문 의료진과 상담을 먼저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식이 정보는 "내 몸 상태"를 전제로 읽어야지, 일반론으로만 받아들이면 혼선이 생깁니다.
췌장암이 무서운 건 초기에 증상이 없어서가 아니라, 증상이 있어도 다른 것과 헷갈리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소화불량이 한 달 넘게 낫지 않거나, 체중이 이유 없이 빠지거나, 마사지해도 안 풀리는 등 통증이 있다면 췌장을 먼저 의심해 보시길 권합니다. 특히 공복혈당이 경계 수준이거나 당뇨 진단을 최근에 받으셨다면, 내시경 초음파나 조영제 CT를 통해 췌장 상태를 한 번 확인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학습 내용을 정리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증상이 있으시면 반드시 의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