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성인 30대 이상의 16% 이상이 당뇨를 앓고 있습니다. 세계 평균인 10%를 훌쩍 넘는 수치입니다.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들고 나서야 저도 그 통계 안에 들어가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경계성이라는 말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솔직히 그 순간은 그냥 멍했습니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는데, 저는 몰랐습니다
건강검진 결과를 받기 전부터 사실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첫 소변을 볼 때 작은 거품이 생기기 시작했거든요. 저는 그냥 전날 물을 많이 마셨나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기회였는데, 단순하게 넘긴 게 아직도 아쉽습니다.
소변에서 거품이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것은 단백뇨(proteinuria)의 초기 신호일 수 있습니다. 단백뇨란 신장의 사구체 필터가 손상되어 원래 걸러져야 할 단백질이 소변으로 빠져나오는 상태를 말합니다. 당뇨가 진행될수록 이 사구체가 꾸덕해진 혈액을 무리하게 걸러내다가 망가지는 건데, 저는 그 신호를 그냥 흘려보냈던 겁니다.
결국 검진 결과지에는 공복혈당 경계성 외에도 고지혈증 경계성, 간기능 이상까지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한꺼번에 세 가지가 경계선에 걸린 걸 보니 몸이 꽤 오래전부터 경고를 보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더 일찍 알아챘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텐데, 시간을 허비한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인슐린 저항성이 쌓이는 과정은 생각보다 조용합니다
저는 당뇨는 단 음식만 엄청 먹는 사람이 걸리는 병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흰쌀밥, 국수, 빵처럼 정제 탄수화물 위주로 먹는 식습관이 훨씬 더 큰 문제였던 거니까요.
음식을 먹으면 탄수화물이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혈액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 혈중 포도당 농도를 혈당이라고 합니다. 정제 탄수화물이나 설탕처럼 단순당(simple sugar)은 분해가 매우 빨라 혈당을 단시간에 급격히 올립니다. 이것이 바로 혈당 스파이크(blood glucose spike)입니다. 혈당 스파이크란 식사 직후 혈당이 정상 범위를 훌쩍 넘어 급등하는 현상으로, 이를 진압하기 위해 췌장이 인슐린을 한꺼번에 대량으로 쏟아냅니다.
이게 한두 번이면 괜찮습니다. 문제는 이 패턴이 매일 반복될 때입니다. 세포들이 인슐린 신호에 점점 둔감해지는데, 이를 인슐린 저항성(insulin resistance)이라고 합니다. 인슐린 저항성이란 인슐린이 분비되어도 세포가 그 신호를 받아들이지 못해 혈당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운동 부족으로 근육량이 줄면 포도당을 저장할 공간도 줄어들어 남는 혈당이 지방으로 전환되고, 이 지방이 다시 인슐린 신호를 교란하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당뇨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2형 당뇨는 바로 이 인슐린 저항성이 핵심 원인입니다. 췌장은 처음에 그냥 일을 더 열심히 합니다. 저항성을 이기려고 인슐린을 더 많이 만들어냅니다. 그러다 결국 췌장의 베타세포가 한계에 달해 인슐린 분비 자체가 줄어들면, 그때부터는 생활 습관 개선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2형 당뇨에 취약한 데다 전통적으로 탄수화물 섭취 비율이 높아 당뇨 발병 위험이 더 높은 편입니다. 최근에는 서구화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이 겹치면서 진단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출처: 대한당뇨병학회).
합병증이 무서운 이유는 천천히, 조용히 온다는 겁니다
예전에 동창생의 어머니가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시는 걸 가까이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본인이 경계선에 있다는 말을 들으니 그 다짐이 그냥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건강에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게 그냥 근거 없는 자만이었던 겁니다.
당뇨가 무서운 이유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는 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혈관이 있는 모든 조직에서 서서히 망가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고혈당 상태가 지속되면 혈액이 끈적해지면서 혈압이 오르고 모세혈관 내벽이 손상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망막 모세혈관은 우리 몸에서 가장 가는 혈관 중 하나라 손상에 취약하고, 이로 인한 당뇨 망막병증(diabetic retinopathy)은 국내 성인 실명 원인 1위를 차지합니다.
당뇨 합병증이 진행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주요 증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손발 저림 및 통증: 말초 신경이 괴사하면서 감각이 상실되고 심하면 절단에 이를 수 있음
- 시력 저하 및 실명: 망막 모세혈관이 막히고 터지면서 망막 박리로 이어질 수 있음
- 신부전: 사구체가 손상되어 단백뇨가 발생하고 신장 기능이 저하됨
- 심근경색 및 뇌졸중: 혈관 내 최종 당화 산물(AGEs)이 축적되어 동맥경화가 진행됨
- 치매: 당화 산물로 인한 염증 반응이 뇌세포에 직접 손상을 줄 수 있음
여기서 최종 당화 산물(AGEs, Advanced Glycation End-products)이란 혈중 포도당이 단백질이나 지방에 달라붙어 생성되는 물질로, 혈관 내에 쌓이면서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주범입니다. 우리가 고기를 구울 때 겉면이 갈색으로 변하는 마이아르 반응과 같은 원리가 우리 몸 안에서 훨씬 느린 속도로 일어나는 겁니다.
아직은 경계성이라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충분히 조절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이 위안이 되기는 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것도 사실입니다. 인터넷에 자료는 넘쳐나는데 정작 제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게 쉽지 않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 결과를 토대로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첫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지금 당장 몸이 아프지 않다고 안심하면 안 됩니다. 저처럼 거품 소변 같은 작은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당뇨는 예방이 가장 확실한 치료입니다. 흰쌀, 밀가루, 단순당을 줄이고 규칙적인 운동으로 근육량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정기적인 혈당 검사로 본인의 수치를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건강은 자신하는 게 아니라 확인하고 관리하는 겁니다. 저는 그걸 너무 늦게 배웠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이상이 의심될 경우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