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당뇨가 발을 잘라내는 병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설마 나한테?"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런데 장화를 신고 난 뒤 이틀 만에 종아리에서 물집이 터지고 살이 살짝 벗겨진 걸 발견했을 때, 그제야 몸이 먼저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공복혈당 경계성 진단을 받은 저조차 이럴진대, 당뇨인 줄도 모르고 지내다가 발을 절단하게 되는 분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화혈색소 9.5가 의미하는 것 — 숫자가 보여주는 당뇨발의 진짜 위험
당뇨인 줄도 모르고 응급실을 찾은 환자의 당화혈색소(HbA1c)가 9.5였다는 사실이 저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여기서 당화혈색소란 최근 약 3개월간의 평균 혈당 수준을 반영하는 수치로, 정상 기준은 5.6 이하입니다. 9.5라는 숫자는 단순히 혈당이 높다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몸 안에서 혈관이 조용히 망가지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당뇨병의 핵심 문제는 고혈당이 지속되면서 혈관 벽이 딱딱해지고 좁아진다는 점입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바로 말초혈관병증(PAD, Peripheral Artery Disease)입니다. 말초혈관병증이란 심장에서 멀리 떨어진 팔다리 쪽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혀 혈류 공급이 차단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심장에서 가장 먼 발끝부터 산소와 영양 공급이 끊기면 조직이 괴사하게 되는데, 이것이 당뇨발의 시작입니다.
혈관 문제와 함께 신경 손상도 동시에 진행됩니다. 당뇨성 신경병증(Diabetic Neuropathy)이 생기면 통증이나 온도 변화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당뇨성 신경병증이란 고혈당으로 인해 신경 세포가 손상되어 감각이 무뎌지거나 아예 소실되는 합병증을 뜻합니다. 실제로 응급실에 온 환자들 중 "발을 잘라내는데도 하나도 안 아프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무통증이 오히려 병이 심각하게 진행됐다는 신호입니다. 정상적인 신체라면 아파야 할 부위가 느끼지 못하는 것, 그게 당뇨발이 무서운 이유입니다.
제가 장화를 신고 물집이 생겼을 때 이틀이 지나서야 알아차렸던 게 딱 이 경우였습니다. 경계성인 저도 감각이 조금 둔해진 건지 싶어서 이후로 발 상태를 훨씬 더 자주 확인하게 됐습니다. 당뇨병 환자 5명 중 1명은 당뇨발을 경험하게 된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니, 혈당 관리만큼 발 관리가 중요하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당뇨발 예방을 위해 지금 당장 점검해야 할 항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매일 발 전체(발가락 사이, 발바닥, 발뒤꿈치)를 육안으로 확인하는 습관
- 작은 상처도 2주 이상 낫지 않으면 즉시 병원 방문
- 꽉 끼거나 마찰이 심한 신발 착용 자제
- 맨발로 야외를 걷거나 불균형한 표면을 걷는 행동 주의
- 혈당 수치뿐 아니라 발의 혈류 상태도 정기적으로 검사 요청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당뇨발 환자 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입니다(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혈당 관리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지만, 정작 발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낮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건강검진이 늦었던 사람들 — 제 경험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이유
저도 예전에는 젊다는 이유 하나로 건강검진을 몇 년이나 건너뛴 적이 있습니다. 몸에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굳이 검사받을 필요가 있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검진을 받고 나서 공복혈당 경계성이라는 결과를 받아들고 나서야, 그 안일함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이번에 알게 된 사례들 중 30년간 당뇨를 앓아온 75세 환자분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걸렸습니다. 꼬박꼬박 혈당 관리를 해왔는데도 욕실 배수구 덮개에 발이 걸려 생긴 작은 상처 하나가 결국 발가락 절단으로 이어진 경우였습니다. 원인은 전경골동맥(Anterior Tibial Artery)이 막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전경골동맥이란 종아리 앞쪽에서 발등과 엄지발가락 쪽으로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으로, 이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면 발등 쪽에 산소 공급이 차단됩니다. 혈당 수치가 정상 범위(당화혈색소 5.9)였음에도 이미 혈관과 신경은 수년 전부터 손상이 축적된 상태였던 겁니다.
이 지점이 제가 이번에 가장 크게 놀란 부분입니다. 혈당 수치가 좋아졌다고 해서 이미 손상된 혈관이 회복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 미세혈관 합병증은 당뇨 발생 시점부터 이미 서서히 진행되고 있으며, 임상적으로 증상이 드러나기까지는 평균 10년 가까이 걸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혈당이 좋다고 안심하고 발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제는 제대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옆에 있던 동생과 이야기하다 제가 "나 공복혈당 경계성이래"라고 했더니, 동생도 "언니, 저도요"라고 하더라고요. 나이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게 이 병이구나 싶어서, 같이 운동하자고 손을 잡았습니다. 지금은 아침을 굶지 않으려는 노력, 식사 후에 바로 앉아있지 않고 움직이는 습관, 그리고 하루 걷기 운동은 꼭 지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작은 것들이지만, 지금부터 쌓아가는 습관이 10년 뒤 혈관 상태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니 절대 대충 할 수가 없습니다.
대한당뇨병학회에 따르면 국내 30세 이상 성인의 당뇨병 유병률은 약 16.7%에 달하며, 당뇨 전단계(경계성)까지 포함하면 전체 성인의 44%가 해당된다고 발표했습니다(출처: 대한당뇨병학회). 이 숫자를 보면 건강검진을 미루는 것이 단순한 귀찮음이 아니라, 실질적인 위험을 방치하는 행위라는 걸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당뇨는 혈당 수치만 관리하면 된다는 생각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혈관과 신경이 지나가는 모든 곳이 전쟁터입니다. 발은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가장 조용히 신호를 보내는 곳이고요. 저는 이번 경험 이후로 건강검진을 절대 건너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미 경계성에 들어선 분들이라면, 혈당 관리와 함께 발 상태를 꼭 챙겨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증상이나 치료 방향은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